조율이 살짝 풀린 피아노
할머니 댁에는 피아노가 있다.
할머니 댁의 피아노는 조율이 풀려있다.
그것이 아니라면 원래부터 피아노의 소리 자체가 그러한 소리일지도 모르겠다.
그래서인지 지금의 내가 듣는 그 피아노의 소리는
소리와 동시에 옛날의 향기가 동시에 몰려온다.
다른 피아노보다 묵직한 건반
그 건반을 누를 때 건반이 들어가는 정도 또한 다르다.
페달을 밟을 때 페달의 지속 시간도 다르고
페달이 밟히는 정도도 다르고
필요한 힘 또한 다르다.
사실 모든 피아노들이 똑같지는 않아 대부분 비슷한 결과를 만들어낼지도 모르지만
어릴 적 가던 할머니 댁에 피아노를 못 치던 시절부터 한 번씩 누르던 그 건반은
오늘 다시 눌러보며 지나간 세월을 볼 수 있었다.
피아노 위에 올라가 있는 가족들의 사진들
그 피아노에 앉아 연주를 하며 위를 보면 우리 모두의 추억이 보인다.
그런 추억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은
무언가 뜻깊은 일이라고 느껴진다.
억원을 능가하는 피아노도 연주해 봤다.
하지만 그렇게 비싼 피아노일수록 비전공자가 느끼기엔 더 무겁고 별로라고 느낀다.
하지만 할머니 댁에 있는 낡은 피아노는
비전공자라고 하더라도 그 느낌은 알 것이다.
왜냐하면 피아노의 소리가 만드는 감정이 아닌
피아노 그 자체가 만들어낸 감정이니까
물건은 감정을 담는다
물건은 감정이 없다.
하지만 물건엔 감정이 담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.
그 물건을 만지면서 감정의 전이가 일어났다.
설명하기는 너무 어려운 현상이다.
하지만 실제로 일어났다.
사물 자체가 만들어낸 현상이 아니라고 하더라도
신기한 경험이다.
꼭 이러한 것뿐만 아니라 여러 모든 물건에서도 똑같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.
그렇기 때문에 여러 복제품 가운데 특별한 물건이 만들어지나 보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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